아베 토모미 [죽싶나날] 숫자 회 각론1 「7759」의 색채에 대해(자체번역,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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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더자바고 작성일19-08-14 22:06 조회3,872회 댓글0건본문
만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만화를 보고 일독하는 것을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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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회」란, 아베 토모미 선생님의 불후의 명작인 「죽고 싶을만큼 한심한 날들이 죽고 싶을만큼 한심해서 죽도록 죽고 싶지 않은 날들」
통칭 「죽싶나날」의 종반(?)의 3부작(?) 「8304」「7759」「7291」을 뜻한다. 더 계속될 수 있으므로 물음표를 남겨두자.
이 기사에선 「숫자회」의 이것저것에 대해, 세세한 표현, 사건의 진상, 테마 등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번 회에선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7759」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춰보자.
「8304」 「7759」는 단행본 2권에 수록되어있으나, 「7291」은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았으나 무료로 읽을 수 있다.
https://mangacross.jp/comics/sinihibi/20
이 중에서 「8304」에 대한 최고의 리뷰가 존재하므로 이쪽을 봐주었으면 한다.
http://minesweeper96.hatenablog.com/entry/2015/05/31/124302
말하는걸 깜빡했는데, 만약 「죽싶나날」 1, 2권을 읽지 않았다면, 나쁜 말 하지 않을 테니 이하의 스포일러투성이의 쓰레기감상을 보기 전에 지금 바로 사서 읽어라. 이 기사는 바보같이 길지만, 기사를 읽는다고 작품의 매력이 바보같이 전달되지도 않는다. 사라. 「하늘이 잿빛이라서」와 「치이는 조금 모자라」도 물론이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죽싶나날」 2권을 손에 쥐고, 적절히 확인해가면서 이 기사를 읽어주었으면 한다. 이하의 페이지 숫자는 「죽싶나날」의 2권이기도 하다.
7759
「7759」의 첫 페이지는 「죽싶나날」 2권의 표지로, 다음 페이지는 「목차」이다. 라고 해도, 「죽싶나날」 2권의 표지는 물빛과 핑크의 얇은 물방울무늬를 배경으로 했다. 오른쪽 눈은 오렌지, 왼쪽 눈은 파란색으로, 각각의 귤의 모습이 비치는 치나츠. 목차의 배경은 검은 바탕에 보라색과 오렌지(오렌지 쪽이 많다)의 불규칙한 배치의 물방울로 되어 있지만, 이것은 「7759」의 전체를 감싸는 색채의 체계와(일부 제외) 일치한다.
뭔 소린지? 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먼저 「8304」에 등장하는, 색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색을 상기시키는 듯한 표현이 사용되어 있는 물체나 현상을, 보이는 대로 최대한 뽑아내 보자.
잿빛 마을이 희푸르게 물든다, 먹을 섞은 듯한 비, 쥣빛 셔터, 은빛 자전거, 군청색 풍경, 새까맣게 물든 도로, 신호등의 빨간불, 노란불, 파란불, 아이보리와 블루 에나멜 백, 하얀 폴로 셔츠, 물빛 균열, 푸른 그림자, 녹색, 옅은 진갈색, 우윳빛의 잡초, 열대어 같은 비비드 옐로의 경차, 검은 혈관처럼, 교정은 마치 은과도 같이 빛을 띠고 있어서, 계단은 잿빛으로 칠해져 있어서, 교실은 마치 물속처럼 옅은 녹빛이 어른어른 반사되어서, 책상은 햇빛과 그림자로 하얗게 물들고 검게 물들어서, 수영장은 적자색이 되어서, 염소는 쥣빛이 되어서, 교과서는 물빛으로 웃어서...
몰아치는 색채 표현이다. 이것의 대부분은 태어나서 8304일(거의 23년)이 지난 「켄쨩」의 독백이며,
회상에 등장하는 사물의 단순한 묘사 → 색채를 이용한 비유 → 비현실적인 색채표현 → 비현실적이며 특정 색채를 갖고 있지 않은 단문(여기에는 색채 묘사가 없다. p86이나 p87에서 볼 수 있음) → 다시 회상의 단순한 묘사(보는 관점이 이전과는 달라짐)
와도 같은 차이가 발생하거나, 서두에 등장하는 채도의 낮음을 눈치챌 수 있다만, 본론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그저 「색상에 관한 평등」이라는 것이다. 「7759」의 색채표현은 이하와 같이 되어있다.
오늘의 저녁 하늘은 완연한 자주색에 약간의 등자색을 녹인 듯했다, 제비꽃색의 인형 양초, 잠든 의식같은 도라지꽃색을 한 그레이프 젤리, 피부가 평소보다 더 하얗다, 새빨간 피의 온도, 가습기는 노란색, 청자색 하늘에 가로수의 가을이 우리들을 축복하듯이 빨갛게, 노랗게, 군청으로 물드는 모래밭, 핑크와 골드 향수, 여름의 아침해가 나무들의 초록을, 치나츠 어떻니, 이 세상은 , 다양한 것들로 눈을 빛내렴, 조금 색이 옅은 눈동자가 햇빛에 비쳐서 폭발을 일으킨 오렌지색의 우주처럼 깊구나.
켄쨩(어른)이 색에 대해 선명히 주석을 달아논 「8304」와는 달리, 등장인물(특히 치나츠의 가족)이 자유롭게 색을 포함하여 발언하고 있기 때문에 난잡한 인상을 받지만,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제비꽃 색의 인형 양초」, 그리고 「치나츠 어떻니, 이 세상은 , 다양한 것들로 눈을 빛내렴, 조금 색이 옅은 눈동자가 햇빛에 비쳐서 폭발을 일으킨 오렌지색의 우주처럼 깊구나」의 두 가지의 표현과, 거기서 보이는 이항대립이다.
제비꽃 색의 인형 양초
「생일 케이크」를 이미지 검색해봤으면 한다.
만약 제비꽃 인형 캔들이 정연한 채 20개 꽂혀있는 케이크가 나온다면 내 패배다. 정말 미안하다. 이 기사는 전부 겉치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생일 케이크에 제비꽃 색의 양초(만!!) 세워져 있는 경우는 매우 적다. 심지어 제비꽃 인형이라는 호러 물체를 세울 일은 없겠지. 이 외에 「7759」 안에 「인형」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 타치바나의 대사
"이렇게 인형처럼 조용히 눈을 감은 얼굴을 보고 있으니, 더욱 더 천진난만한 아이 같네요"
"저는 인형같은 사람을 좋아했어요"
뿐이다. 철저하게 언어에 신경쓰는 작가의 작품인지라, 여기에 어떠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사견이 아니다. 전자의 발언이 지나간 시점에서 치나츠는 이미 죽었고, 타치바나도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 후자의 「인형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즉 시체다. 「인형 양초」가 사체를 나타내고 있다,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인형 양초가 제비꽃 색이라는 것으로도 의미를 도출해 낼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오렌지색의 우주
「우주」를 이미지 검ㅅ..(이하생략)
빅뱅 직후의 우주는 오렌지색으로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 표현의 위화감은 없지만,
"치나츠 어떻니, 이 세상은 , 다양한 것들로 눈을 빛내렴, 조금 색이 옅은 눈동자가 햇빛에 비쳐서 폭발을 일으킨 오렌지색의 우주처럼 깊구나"
이것은 치나츠의 부모가, 막 태어난 치나츠에게 말하는 장면이다. 확실히 「폭발」이라는 발언이 나와있긴 하나, 물질이 물질의 모습을 가지지도 못한 채 열을 발산하는 혼란과 살벌한 우주는 아무리 생각해도 「깊다」는 아니다. 그런 것을 예로 들어 자식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아마도 좀 더 안정된 우주를 떠올려야 하고, 세계를 찬양할 때 어두컴컴한 우주에 비해 「오렌지」라는 색을 사용한 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혹은 정말로 빅뱅 직후의 우주를 가르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파티」와도 같은 우주도 있을 법하니, 그 후 대사와 이어지기도 하고, 절대로 틀렸다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굳이 색이 없는 우주를 오렌지색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선 차이가 없으므로, 이 이상 기술하지 않겠다.
자주색과 오렌지
자주색과 오렌지의 대립은 「7759」에 자주 등장한다. 첫 문구부터 그렇다.
"오늘의 저녁 하늘은 완연한 자주색에 약간의 등자색을 녹인 듯했다"
"청자색 하늘에 가로수의 가을이 우리들을 축복하듯이 빨갛게, 노랗게 송송 빛나고 있어"
다른 색에 대해선 이런 색채의 대립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작중에서는 치나츠(혹은 작가)에 의한 색의 차별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상기의 장면 「우리들」을 축복하는 것은 청자색의 하늘도 아니고, 빨갛게, 노랗게 (섞으면 오렌지) 빛나는 가로등도 아니다.
"창문을 열면 금목서의 향기를 초대하고 싶어"
"블루베리 정말 싫어 저리 가"
군청빛으로 물드는 해변, 노란색 가습기, 색이 명시되어있지 않은 와인이라고 하는 자줏빛도 오렌지도 아닌 것을 생각하다 보면, 분명히 치나츠는 자주색과 오렌지에 차별을 두고 있다. 앞의 「제비꽃색 인형 양초」 「오렌지색의 우주」를 고려사항에 넣으면, 「7759」에서는 자주색이 「나쁜 것」, 오렌지가 「좋은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여기에 더 하나, 엄청나게 「나쁜 것」이 들어간다만, 일단은 뒤로 미루자.
여기서 죽싶나날의 2권 앞으로 돌아가보자.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이 자주색과 오렌지의 디자인이 「7759」를 위해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죽싶나날 1권의 목차에서는 자주색과 물방울만 그려져 있고, 1권보다 2권 쪽이 해피엔딩이 많다(일단은)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망상해도 좋다. 그렇다면 목차는 「7759」와 관계 없잖아─라고 화내도 좋다. 어쨌든간에 표지의 치나츠의 눈동자 색이 파랑과 오렌지의 구조를 나타내고 있으니까. 자주색이 아니라 파랑(물빛)이라는게 좀 걸리긴 하지만, 그정도의 오차는 앞으로의 고찰에 산더미만큼 나오므로 신경쓰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아마 디자인쪽 사정이겠지.
치나츠선배의 사망원인에 대해
「7759」에서 치나츠는 7759일째 생애를 끝마치지만, 그 사망 원인에 대해선 밝혀진 것이 없어, 「히터의 가스누출」로 인한 사고설 , 「치나츠는 자신의 시체를 생일선물로 했다」라는 자살설 , 「타치바나가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젤리에 독을 넣었다」라는 타살설 각각이 뚜렷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 논의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 혹은 더 카오스로 만들고 싶다.
p138을 보자.
...라고 말해도 페이지 수의 표시가 생략되있을 수도 있으니까, 알기 쉽게 말하면
치나츠 어떻니, 이 세상은 , 다양한 것들로 눈을 빛내렴, 조금 색이 옅은 눈동자가 햇빛에 비쳐서 폭발을 일으킨 오렌지색의 우주처럼 깊구나
의 페이지를 보자. 이 페이지는 삼단구성이 되어 있고, 각각의 단의 중심에 히터, 약봉지, 젤리 용기가 나열되어 그려져 있다.
내가 제창하는 것은, 사고와 자살과 타살이 겹쳐진 설 이다.
상태가 나쁜 히터는 가스누출을 일으켰고, 치나츠는 타치바나의 시체애호를 알고 있어 스스로 시체가 되어 생일 선물로 하려고 생각해 수면제를 과잉 섭치하는 수를 택하고, 이를 제비꽃 색의 인형 양초에 함축해서 전달하였으며, 타치바나는 매일 젤리에 독을 넣었다, 라는, 그저 그 뿐인 설이다.
그저 그 뿐인 설이지만, 사고설, 자살설, 타살설 중의 하나를 택해 생기는 모순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일관성을 갖는 것 같은 타치바나의 행동에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크다. 꿈이 이루어졌다는 기쁨, 스스로 선배를 죽였다는 후회, 제비꽃색의 인형 양초를 볼 때의, 이해자를 얻었다는 것에서 올라오는 행복감. 절묘한 정도로 타치바나의 심정이 떠오른다. 또한, 치나츠가 케이크에 독을 넣을 동기가 없으므로, 타치바나의 사망원인은 히터라고 생각된다만, 무엇이 치나츠의 결정적인 사망원인이 된건지는 불명확하므로, 일부러 모호하게 한 것 같다. 만, 그것은 본론이 아니다.
내게 있어 이 설의 최대의 메리트는, 치나츠의 최종 사망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잠든 의식같은 도라지색 젤리에 독을 넣었다」 는 것이다.
자주색과 오렌지(2)
그렇게 되면, 더이상 자주색과 오렌지의 대립은 「나쁜 것」, 「좋은 것」보다도 더욱 구체적이고 비대칭적이 된다. 시체같은 인형 양초나 독이 들어간 젤리의 색인 자주색은, 「나쁜 것」이라는 것보다 「사(死)」를 나타낸다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렇다면 오렌지는 「생(生)」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7759」에 의한 생명 혹은 세계의 인식에 대해 생각해 보자.
"네가 지금부터 디딜 세계는 파티처럼 많은 사람과 사물들로 넘쳐나고 있어"
치나츠의 부모는 철저하게 세계를 찬양한다. 세상에는 즐거운 것밖에 없어, 세계는 깊어, 세계는 아름다워. 세계는 파티와도 같아서, 그래서 즐겁다. 이것이 치나츠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의 최종반에 나오는 세계를 보는 방식이다. 이를 인용하면, 오렌지를 「파티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고, 이로부터 이야기가 딱 들어맞는다.
치나츠와 타치바나는, 파티를 빠져나왔다. 죽음의 은유가 아니라, 치나츠의 송별회 쪽 이야기다. 이 때,
"청자색 하늘에 가로수의 가을이 우리들을 축복하듯이 빨갛게, 노랗게 송송 빛나고 있어"
에서 미루어보면, 오렌지 색의 세상은 그녀를 축복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좋을 때 노래하고 좋을 때 춤추고 좋아하는 사람과 잡담해도 돼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만 있어도 돼"
"만약 지치면 구석에 앉아도 돼 쉬어도 돼 보지 않아도 돼 듣지 않아도 돼"
라고 치나츠의 부모가 말하는 것처럼, 파티와도 같은 세계에는, 노래도 춤도 하지 않고 그저 좋아하는 사람과 잡담하거나, 구석에 앉는 권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적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으므로, 세계는 그녀들을 축복했다. 한 번은.
그녀들이 두번째의 「파티를 빠져나온」 것 = 죽음을 선택한 때도, 오렌지 = 「파티와도 같은 세계에서 사는 것」은 일단, 손을 뻗었다. 치나츠가 (오렌지 색의) 금목서의 향을 초대하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면, 적어도 히터가 상태가 나쁜 탓에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치나츠는 케이크에 제비꽃 색의 인형 양초를 세워 죽음을 택하고, 타치바나는 도라지색의 젤리에 독을 넣어 치나츠를 죽이려 했다.
자살을 선택한 치나츠를, 세계는 구할 수 없었다. 그 이유도, 치나츠의 부모가 알려주었다. 치나츠의 부모는 파티와도 같은 세계의 자유를 말하고 있지만, 파티를 빠져나왔을 때의 자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죌르 범한 치나츠를 세계는 냉혹하게 외면했다.라는 것이 한 가지의 알기 쉬운 답이 될 것이다. 이것으로 대부분 색채표현의 설명은 끝났을 것이다. 마지막에, 둘이 손에 넣은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자.
행복
치나츠와 타치바나는, 만나고, 접하는 것으로 매우 오렌지빛의 행복을 얻었다. 한편으론, 타치바나가 치나츠에게 준 「시체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죽는 기쁨」, 타치바나가 얻은 「좋아하는 사람을 죽이고 그 시체를 얻은 기쁨」, 제비꽃색의 양초를 매개체로 치나츠가 타치바나에게 전한 「시체를 살아하는 자신을 위해 좋아하는 사람이 죽어준 기쁨」은, 오렌지색의 행복이 아니다. 「죽음(死)」이라는 자주색 그 자체가 엮인 이상, 그것은 치나츠의 부모가 규정한 「즐거운 것」에서 일탈했다. 오렌지 세계에서 해방되어 손에 넣은, 자주색의 행복이다.
치나츠와 타치바나는, 타치바나 혼자서는 얻을 수 없는 오렌지색의 행복과, 타치바나여도 치나츠여도 손에 얻을 수 있는 자주색의 행복 양쪽 을, 서로 부여해준 것이다. 그래서 「죽싶나날」 2권의 표지에 미소짓는 치나츠의, 오렌지와 파랑의 양쪽 눈에서는, 타치바나가 비치고 있다. 분명 타치바나의 야쪽 눈에도 또 오렌지와 파랑으로, 거기서는 치나츠가 비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극단적으로 양립불가능한 두 가지의 행복을 얻은 것이기도 하다. 이 궁극적 행복이야말로 우리를 「7759」에 끌어당기는 것은 아닐까.
끝으로
여기까지가, 내가 2년 조금 걸쳐 도달한 것으로, 드디어 타인에게 전할수 있을만한 결론이다. 이 기사에는 「오렌지와 자주색의 대립」이라는, 감각적으로 얻은 명제를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이끌어 내려고, 색채표현 속에 있는 위화감으로부터 출발하여, 지금도 논의의 여지가 있는 치나츠의 사망원인을 강제로 확정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오렌지와 자주색이라는 색이 아니라, 오렌지와 자주색으로 칠해진 생과 사의 대립, 그리고 그 대립을 초월한 둘의 행복이다. 그것은 마침, 「8304」에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은 기억 속의 색채 그 자체가 아닌 것과도 같다.
여러가지 잘난 듯이 써놨지만, 애초에 토대가 되는 「오렌지와 자주색의 대립」마저 위태로운게 실정이다. 군청과 자주색도 아닌 블루베리를 자주색에 편입시키거나, 노랑색과 오렌지를 구별해 뒀으면서도 「빨갛고 노랗고」를 오렌지로 해석하거나하는 자의적 해석이 잔뜩 담겨져 있다. 서두의 한 문장만으로.
"오늘의 저녁 하늘은 완연한 자주색에 약간의 등자색을 녹인 듯했다"
만약 자주색과 등자색이 반대라면, 「오렌지 세계의 속에서 자주색이라는 죽음이 침입하고 있는 표현이다. 쩌는 표현력인데」라고 칭찬했겠지.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 없어서 오렌지랑 자주색의 대립을 사용하는 데에만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뭐 어쨌든 허술한 논리에 힘입은 기사다만, 그래도 결론의 그럴듯한 점만 전해졌으면 좋겠다. 여러분의 더욱 논리적인 결론을 기대하겠다.
여기까지 오는데만 기력을 다 써버려서인지, 반복되는 「나는 생각한다」의 의미나, 치나츠와 타치바나의 죽음과 함께 나타나는 사람의 손이 이어지는 고리의 의미, 그 고리가 확대되어가는 장면이 완전히 일치하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나츠가 죽을 때 거대한 고리가 그려져 있는 장면, 타치바나가 죽을 때엔 둘의 행복한 모습이 그려져 있는 이유, 등등의 여러가지 수수께끼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칫하다간 평생 대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이런 굉장한 명작 「7759」와 만났던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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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만화를 굉장히 인상깊게 봤고, 원래 아베 토모미 선생님의 팬이라.. 개인적으로 아주 좋게(?) 해석한 리뷰가 있어서 번역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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